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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성시

가릉빙가 2009. 6. 22. 10:30

 

문전성시(門前成市)  



문 앞이 저자(市]를 이룬다는 뜻으로 권세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빈다는 말.

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



전한(前漢) 말, 11대 황제인 애제(哀帝) 때의 일이다.

애제가 즉위하자 조정의 실권은 대사마(大司馬)국방 장관

왕망(王莽)훗날 전한을 멸하고 신(新)나라를 세움을

포함한 왕씨 일족으로부터 역시 외척인 부씨(傅氏:애제의 할머니),

정씨(丁氏:어머니) 두 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20세인 애제는 동현(董賢)이라는 미동(美童)과

동성연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충신들은 간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중 상서 복야(尙書僕射:장관) 정숭(鄭崇)은 거듭 간하다가

애제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조창(趙昌)이라는 상서령(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아첨배로 왕실과 인척간인 정숭을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숭의 집

'문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사온데[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오소서."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문전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예, 폐하. '신의 문전은 저자와 같사오나[臣門如市]'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황공하오나 한 번 더 조사해 주시 오소서."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소청을 묵살한 채 옥에 가뒀다.

그러자 사례(司隷)가 상소하여 조창의 참언(讒言)을 공박하고

정숭을 변호했으나 애제는 손보를 삭탈관직(削奪官職)하고

서인(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정숭은 그 후

옥에서 죽고 말았다.



삭탈 관직 : 죄 지은 벼슬아치의 벼슬과 품계[品階)직품(職品)과

관계(官階))를 빼앗고 사판(仕版)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깎아 버림.